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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역사 태권도 도복/띠 태권도 기술체계  
 
태권도의 역사
연원
  한반도와 중국대륙의 동쪽 만주주변 한민족의 부족국가에서는 영고, 무천, 동맹 등으로 불리운 제례에서 하늘을 숭상하는 가무, 유희오락을 통해 부족 단합과 많은 수확을 기원했다.이런 큰 잔치 중의 가무, 유희는 자연스럽게 경쟁 의식을 갖게 되어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전제례 행사인 올림피아 제전처럼 경기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부족의 방어와 세력확대를 위해서는 전투 능력 향상을 도모해야 했으며, 자연스럽게 숭천제례의 신체활동은 투기를 중심으로 경기화 되고 발달하게 되었다.
태권도는 이런 가운데 한민족 고유의 투기형태로 생성되었다.
고대
  여러개의 부족국가가 점차 흡수·통합되어 한민족은 고구려(BC 37), 백제(BC 18), 신라(BC 57)의 3개국으로 나뉘어 중국대륙의 동북방과 한반도를 지배했다.
택견, 수박으로 불리 우던 태권도는 무예수련의 기초로 당시에 널리 행해졌으며 고구려는 "선배", 신라는 "화랑"이라는 청소년 집단 교육제도를 창안하여 이들은 산천을 주유하며 무예수련을 했다. 고대의 태권도에 관한 사료에는 고분벽화, 불상 그리고 서적의 기록 등이 남아있다. 고분 벽화중의 하나로AD 209∼AD 427년 당시의 고구려의 수도였던 환도성 근처인 현재 만주 통화성 집안현 통구에 있는 무용총 현실 벽화가 있다. 이 벽화는 두 사람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마주보며 손·발로 상대를 공격할 듯한 자세를 보여 오늘날의 태권도 경기동작과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또 신라 문화예술의 정화로 일컫는 석굴암의 금강역사상이나 분황사 9층 석탑의 인왕상 등의 몸 사위는 태권도의 품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가의 멸망으로 사료가 단절된 백제의 경우에는 일본서기에 백제의 대좌평 지적을 일본 조정에서 초청해 일본 건아들과 상박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 일본인에게 선진 문화권인 백제인들이 맨손무예를 지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세
  고려에 와서는 삼국 시대에 행해지던 택견(태권도)이 체계화된 무예로서 무인들 사이에서 활발히 행해졌다.고려사에 보면 태권도가 수박희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 권 128, 열전 41, 이의민에 보면 "이의민은 수박희를 매우 잘하므로 의종 임금은 이를 사랑하여 대정에서 별장으로 승진 시켰다"는 구절이 있다. 또 "임금이 상춘정에 납시어 수박희를 보셨다. " "임금이 화비궁에서 수박희를 보셨다. " "말바위에 납시어 수박희를 보셨다. "는 고려사 권 36 충혜왕의 기록도 있다.
고려 때에 있어 수박희(태권도)는 무예로서 뿐만 아니라 스포츠로서 제 삼자가
관람할 수 있을 정도로 체계가 서 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근세
  태권도가 계속 성행했다. 더우기 대중화경기로 되면서 백성들 사이에서도 경기를 행하게 되었다.전라도와 충청도 경계를 이루는 작지 마을에서 양도 사람들이 모여 수박희로서 승부를 다투었다는 기록에서 수박희는 무예로서 만이 아니라 스포츠로서도 성행한 것을 알 수 있다. 또 태종실록 권 19에 보면 "병조의 의홍부에서 수박희로서 인재를 시험하여 방패군에 보하되 3인을 이긴자를 썼다." 는 기록이 있으며, "임금이 잔치를 베풀고 군사로 하여금 수박희를 행하도록 하고 구경했다.
" (태종실록 권32)는 기록도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박희는 실전에서도 사용되었다. 기제잡기 권 7의 임진 일록에 보면 "금산에서 적군(왜병)이 몰려오니 우리의 의병들은 무기가 떨어져 할 수 없이 맨손으로 수박희 싸움으로 적과 대결하다가 의병장 조헌도 죽고 영규도 싸움터에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태권도 사료 중 하나로서는 정조 때 간행된 종합무예기술서인 무예도보통지의 권법편이 오늘에까지 전래되고 있다. 이 책은 수 많은 국내외 병법서와 무기 사용술및 권법서를 참고해서 도해식 설명을 첨가했다.
현대
  국운 쇠퇴와 더불어 무인들의 몰락은 군대의 해체 등으로 가속화되었고 일제는 강압적인 무력침략을 통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일제의 한민족 탄압이 강화되기 시작하고 항쟁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백성들의 무예수련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독립군, 광복군 등 항일조직의 심신 훈련방법으로써나 개인적인 무예 전승 의욕에 따라 태권도(태견)의 명맥은 미미하지만 민족의 숨결속에 이어지고 있었다.
8.15 해방 후 잊혀진 우리의 태권도를 되찾자는 뜻있는 이들이 모여서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점차 우리의 뿌리를 찾아가게 되어 드디어 1961년 9월 16일 대한태권도협회 가 창설되고 1963년 2월 23일 대한체육회에 27번째 가맹단체로 가입되어 1963년 10월 9일 전주에서 개최된 제 44회 전국체전에 태권도가 공식경기로 처음 참가하게 되었다. 오늘날 인류의 스포츠제전인 올림픽 무대에서까지 각광받고 있는 태권도 경기는 바로 25년전인 1963년의 전국체육대회를 계기로 경기규칙과 보호용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태권도 도복/띠
태권도 도복
  도복은 태권도인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태권도의 전통성을 계승하는 데 필요한 고유의 복장이다.
그러한 도복은 <품도복>과 <단도복>의 두 가지로 구분되며 품도복은 15세 미만의 수련자가 입는 것으로 상의의 깃이 검정과 빨강의 반반으로 되어 있으며 단도복은 상의의 깃이 검정색만으로 되어 있다. 도복은 무엇보다도 수련에 불편하지 않도록 실용적인 것이어야 하며 딱 맞는 것보다 움직임이나 발차기에 불편이 없는 여유 있는 것이 좋다. 바지의 길이는 끝이 발목에 올 정도의 약간 짧은 듯한 것이 좋다.
 
띠는 급(級) 또는 품(品), 단(段)을 나타내는 데 필요한 것으로 흰띠, 노란띠, 파란띠, 초록띠, 밤색띠, 빨간띠, 품띠, 검정띠의 8가지 종류가 있으며, 넓이는 약 5cm이다.
유단자는 만 15세 이상이어야 하며 전부 검정으로 된 띠를 착용하고, 유품자는 전 길이의 절반은 검고 절반은 빨간색으로 된 띠를 한다. 단, 품띠는 15세 미만의 수련자가 맨다.


태권도의 기술체계
 

태권도는 기본동작, 품새, 겨루기, 격파, 그리고 호신술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한다면 마치 톱니바퀴에서 톱니가 빠진 격이 된다. 즉, 기본동작은 품새의 구성요소가 되고, 품새는 가상의 적에 대한 공격과 방어를 하는 것이므로 그 자체가 겨루기가 되는 것이고 또한 겨루기는 실전호신술과 바로 연결되는 것이다.

태권도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기본자세는 씨앗, 기본동작은 뿌리, 품새는 줄기, 겨루기는 열매로 볼 수 있으며, 좋은 씨앗과 뿌리가 튼튼해야 좋은 열매를 맺듯이 태권도 수련에 있어서 기본자세 및 동작의 수련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태권도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통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이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본동작과 품새, 겨루기, 격파, 호신술과 더불어 공격 및 막기동작을 철저히 단련해야 한다. 태권도는 시작과 끝이 없이 계속적인 반복수련을 통하여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속도, 균형, 집중, 반동력, 호흡조절 등 힘의 원리를 이용하여 일격에 적을 물리칠 수 있는 호신능력을 배양하게 되는 것이다.